4년 전, 카타리나 사제의 개인 고해 기록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침묵.

"고해한지 3개월 되었습니다. ... 아버지.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저의 모든 것이 가슴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습니다. 제 고해를 들어주십시오. 부디 제가 나아가야할 길을 알려주십시오."

무거운 한숨 소리.

"아시다시피 저는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 동네 성당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 저는 보육원 문 앞에 바구니에 뉘인 채로 버려졌기 때문입니다. 친부모는 제게 이름만 쥐어주고 인생 전반을 아버지의 뜻에 맡겼습니다. 이 이야기도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 때 수녀장님께서 말씀해주셨지요. ... 이 모든 것이 다 아버지의 뜻이라 생각했던 때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뜻을 이해하려 하였으며, 나를 버린 그들의 죄를 용서하였습니다."

"... 사실 그들을 미워한 적도 없습니다. 버렸다고 원망한 적도, 질책한 적도 없습니다. 이제와서 그런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제 길을 알고 있고 그 길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벅찬 사람입니다. 하늘에 맹세코 단 한번도, ... 저는 그들을 미워한 적 없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장시간 흐르는 정적.

"... ... 지난주에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버지. 수도회 사람들이 아닌 제 친가족을요. 카타리나 신부의 가족이 아닌 마야 페로니의 가족. 정확히는 그들이 대성당으로 와 저를 찾았습니다. 친아버지가 오셨더군요. 얼굴을 보았음에도 이름을 말하시기 전까지는 친부인지도 몰랐습니다. 인상이 저와 사뭇 다른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리를 피해 비어있는 회합실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친부의 차림새와 목에 건 십자가를 보아서는 그 또한 종교에 몸을 담근 이 같았습니다. 성공회로 개종하며 사제로 지내는 제 모습을 아주 나쁘지 보지만은 않더군요.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제가 무어라 말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거두절미 하고 본론부터 이야기를 꺼내죠. 그가 제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페로니' 라는 성씨에 대한 긴 역사를. 대대로 성직자 가문이었던 저의 집안은 특별한 피를 이어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악마를 이겨내고 유혹을 뿌리치며 만인을 지켜낼 수 있는 그런 힘 말입니다. 그런 힘을 가진 이들은 줄곧 하늘의 부름을 받아 구마 사제가 되었고 평생을 헌신하며 살았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신앙이 흐려진 것인지 세대가 오래 이어져 피가 옅어진 것인지 몰라도 힘이 거의 흩어져 이적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거나 심하면 정말 아무 능력도 없는, 그저 평범한 아이만 태어났다고 합니다. 제 친부가 그쪽에 속한다더군요."

침묵.

"친부에게서 초조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나름대로 교황청에서 알아주는 실력의 엘리트를 배출해냈던 집안이 점점 기울어가는 걸 원치 않으셨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친부는 저의 친모와 혼인을 해 두 아이를 낳았고 그 중 둘째가 바로 저였습니다. 첫째는 남아였다고 합니다. 제게는 오라비 되는 사람이죠."

"친부의 간절함이 아버지께 닿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첫째와 둘째 모두 피를 제대로 이어받아 영적인 능력이 뛰어났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하시면서도 미소를 지으셨으니 당시에도 아주 기뻐하셨을 겁니다. ... 저는 웃을 수 없었지만요. 그럼 도대체 왜 나를, 이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습니다."

"제 표정을 읽은 것인지 친부께서는 답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 집안 사제들은 스스로 답을 찾고 길을 걸어야한다.' 라고요. 모두 친가족의 품이 아닌 사제들의 손에 거둬지고 길러지면서 제대로 된 힘을 갖추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요.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면 그때 다시 만난다고. ... 정말, 말이 안 나왔습니다."

"차라리 돈이 없다고 하지. 그럴 염치도 없다면 미안하다는 한 마디라도 했더라면, 제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멋 모르는 어린 아이는 혼자 두면 얕은 개울가에서도 죽곤 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제 자식을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키우고 던져놓는 모습이라니. 이것이 정녕 우리의 교리에 맞는 행동입니까?"

떨리는 숨소리.
잠시간 정적.


"저는 친오라비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가 이리 자랐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는 어디에 있는 수도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제 와서 저를 찾았다면 오라비는 보다 먼저 찾았을테니까요."

벽을 내리치는 소리.

"아버지.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시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저는 당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 어찌하여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련은 모두 제가 아닌 제 곁의 이웃에게 주시는 겁니까?  ... ... 그는 이미 당신 곁에 있습니다. 천국에 계실 적에 그를 잘 부탁드립니다. 생전에 아주 좋은 사제였다고, 성당 신부들이 말씀해주시더군요."

"친부는 제게 그는 다른 성당에 머물렀으며 구마 사제 활동 중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벽을 긁는 소리.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는 애당초 보육원에서 길러진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줄곧 친부모와 함께였습니다. 그들의 지원을 받아 신학교를 다녔고 서품을 받아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와 가까웠다던 신학교 동기 사제는 제 오라비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아마 그 본인도 몰랐겠지요. 그들은 대외적으로 저의 존재를 지워버렸습니다."

"저는, 저를 세상으로 이끈 자들에게 존재를 부정당했습니다. 이제와서 저를 찾은 이유도 어쩌면 교구청 사이에서 들리는 소문을 따라 온 것이겠지요. 어쩌면 줄곧 제 소식을 어디선가 듣고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친부는 대성당을 떠나기 전에 제게 언제든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남기고 갔습니다. 가족끼리는 돕는 거라고."

"오라비가 죽기 몇 주 전부터 자꾸 꿈에서 나온 누군가를 찾아다녔다고, 성당의 사제들이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다 골병에 들더니 급사했다고요. ... 아버지. 전 그들이 너무나 밉습니다. 제 신앙과 신념을 도구 삼아 휘두른 그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사제복을 입고 있는 제 모습이... 참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한숨소리.

"아버지, 목적을 위해 태어난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게 된 저는 어떻게 다시 그들을 용서 하고 사랑해야합니까. 저는 죄인입니다. 눈이 멀어 제 앞만 겨우 짚고 다닌 죄인입니다. 이런 저의 죄를 용서 해주십시오... 한 사제를 구하지 못하고 제 진리를 쫓기 바빴던 저의 죄를 용서 하시고 사제로서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될 수 있는 지혜와 은혜를 배풀어주십시오."

"그리고,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랜 정적.

"아멘. ... ... 아버지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짧은 정적.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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